
《굴비 한 번 쳐다보고》
박완서 글 이종균 그림 가교출판사
1970년 '나목'이 여성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수많은 작품을 내놓은 한국의 대표작가 중 한 분이신 박완서 선생님의 《 굴비 한 번 쳐다보고》를 소개합니다.
이 그림책은 선생님이 작고하신 (1931. 10. 20. ~ 2011. 1. 22 ) 다음 해인 2012년 출간 되었다.
나는 가끔 선생님이 10년만 더 살아 계셨더라면 우리 그림책의 세계가 얼마나 더 풍성해졌을까 생각하곤 한다.
선생님은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 엄마의 말뚝》 등 수많은 작품이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로서 이 땅에 우뚝 섰지만, 십년만 더 사셨다면 소설가로 산 세월보다 동화작가로 사신 삶을 더 자랑스러워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
사실 선생님의 동화는 《옥상 위의 민들레꽃》 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좋은 작품들을 이미 발표하셨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림책《굴비 한 번 쳐다보고 》를 작고하시기 훨씬 전에 보았다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그림책에 보다 많은 애정을 쏟으셨을 것이고, 우리 그림책의 영역은 보다 깊어졌으리다.
이 이야기는 충북 음성에 실존했다는 자린고비의 패러디동화다.
옛날 어느 시골에 ‘고린재비’라 불리는 지독한 구두쇠가 살았다. 고린재비에겐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반찬값을 아끼느라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솟은’ 굴비 한 마리를 사와서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갈 먹을 때마다 반찬 삼아 굴비를 한 번씩 쳐다보게 한다. 이렇게 돈을 아껴 고린재비는 부자된다.
고린재비는 늙어 죽었지만 삼 형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반찬 없이 밥만 먹고 살게 된다. 여기까지는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굴비 한 번 쳐다보고》를 통해 박완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강남에 사는 유치원생들의 하루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았다.
인터뷰에 응한 아이는 새벽에 집을 나서 늦은 밤에야 귀가한다는데, 학원 순례를 하느라 그렇다는 거다.
기자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20년만 고생하면 60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이 말은 부모의 생각이 아이에게 주입된 결과일 것이다.
난 이런 아이들을 보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컨베이어 시스템 위에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초콜릿.
초콜릿이 공정에 따라 척척척 완성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지만, 우리 아이들이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컨베이어 시스템 위의 제품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모습은 끔찍하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밥만 먹고 반찬을 먹지 않은 아이들이 소리꾼으로도 화가로도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매운맛, 짠맛,신맛을 익히지 못해서 생긴 이야기로 끝을 맺었지만, 이는 작금의 부모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고린재비가 돈을 쫓아 간 결과 아들들이 제 때 익혀야 할 것을 익히지 못해 실패했듯이, 한창 뛰어 놀아야할 아이들을 명문대 합격을 위해 공부에만 매달리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 지를 비유적으로 경고한 것일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이 먼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결코 미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아이의 삶을 짓밟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야할 삶은 컨베이어벨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컨베이어벨트 밖에 있기 때문이다 .
박완서 선생님의 농익은 철학에 이종균 화가가 예스런 그림옷을 입혀 맛깔나게 내놓은 맛있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