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와 어린 동생〉을 중심으로
하야시 아키코 그림, 쓰쓰이 요리코 글
양선하 옮김 한림출판사
〈순이와 어린 동생〉은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아들의 성장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슬이가 순이로 대체되는데, 이번 임무는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이다. 사실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은 첫 심부름 못지 않게 힘들고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생이 막 잠이 들어 엄마가 은행에 다녀온 사이 순이가 어린 동생 영이를 돌보게 된다.
엄마가 문을 나선지 얼마 안 지나 영이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순이는 영이의 신발을 신겨주며 마치 엄마처럼 달랜다.
"아이, 착하지, 우리 영이.
언니가 재미있게 놀아줄게.
자, 이리 와 !"
그제야 영이는 울음을 그친다.
아장아장 걷는 영이의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잡아 이끌 때 순이는 문득 키가 쑥 자라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순이는 동생을 위해 분필을 꺼내 기찻길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차역과 산과 터널을 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영이가 보이지 않는다. 순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동생을 잘 돌봐야할 순이에게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영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 때 큰길 쪽에서 끼익! 자전거를 급하게 멈춰 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이가 다쳤으면 "어떡해!" 쿵쿵 뛰는 가슴으로 달려간다.
이 때 순이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게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생을 잃고 찾아 헤맨 어린 날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순이가 동생을 돌보는 일이 처음이지만, 내게는 이미 동생이 그림자처럼 떠맡겨진 골치 아픈 존재였으므로 나는 틈만 나면 어떻게든 동생의 눈을 피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던 때였다.
동생을 떼어놓고 친구들과 신 나게 산으로 강으로 헤매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이처럼 동생을 찾아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어 우리 가족 모두가 나서 뿔뿔이 흩어져 어두워지도록 찾아다녔지만 동생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어두운 눈빛을 보면서, 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아 어린속에도 가슴이 얼마나 탔는지 모른다.
늦게서야 돌아온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혹시 강물에 빠졌을까봐 횃불을 밝히고 대나무 장대로 온 강바닥을 휘젓고 다녔지만 날이 새도록 동생은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모두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파출소에서 미아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을 찾으러 갔던 누님의 말로는 눈물과 콧물이 뒤엉킨 얼굴로 순경 아저씨가 끓여준 라면을 먹고 있다가 가족들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그 동공 속에 기쁨으로 반짝였을 동생의 눈빛은 순이가 공원에서 어린 순이를 찾아냈을 때와 닮아있었으리라.
순이가 어린 동생을 찾아 뛰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실감나게 그려졌는지, 마치 쿵쿵 뛰는 심장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큰길에서 자전거와 부딪친 건 영이가 아니다.
이번에는 놀이터로 뛰는데, 저만큼 앞에 조그만 여자 아이가 걸어가는 게 보인다.
" 영이야 !"
큰 소리로 불렀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버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낯선 아이다.
이번에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나서 뛰어가 봤더니, 또 모르는 아이다.
" 영이야, 영이야 !"를 외치며 놀이터로 다가가는 순이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고 달음박질도 빨라진다.
이윽고 놀이터에 다가갔더니, 있다! 틀림없이 영이다.
순이는 천 리 만 리, 아니 온세상을 다 헤맨 끝에 어린 동생을 찾아낸 듯싶은데, 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놀이터 모래밭에 웅크리고 앉아서 놀고 있다.
순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영이한테 달려간다. 영이도 순이를 알아보고 방긋 웃으며 모래로 범벅이 된 손을 흔들어보인다.
그런 동생을 순이가 꼭 껴안아준다.
어린 영이는 언니가 왜 이렇게 자신을 꼭 껴안는지 모른다. 저만치에서 볼일을 마친 엄마가 오고 있다.
책장을 덮으면 뒷표지에 엄마와 순이가 영이의 손을 잡고 오는데, 순이는 활짝 웃고 있지만 동생 영이는 뭔가 화가 난 표정이다. 엄마는 그 모습을 의아한 듯 바라본다. 이는 순이와 영이의 갈등이 계속 되리라는 복선이다. 형제(자매)는 커가면서 이와 유사한 과정을 수없이 겪을 것이다.
나는 어린 날 순이처럼 동생이 내게 맡겨졌을 때 착한 형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것은 내 성격이 못되고 모나서가 아니라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무거워서였기 때문이다.
하야시 아키코의 작품으로는 위에 소개한 책 말고도 좋은 책이 많이 있다. 아직도 하야시 아키코의 멋진 책을 구입하지 못하신 분은 당장 서점으로 뛰어가 한 아름 안고 올 일이다.
하야시 아키코 그림, 쓰쓰이 요리코 글
양선하 옮김 한림출판사
〈순이와 어린 동생〉은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아들의 성장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슬이가 순이로 대체되는데, 이번 임무는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이다. 사실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은 첫 심부름 못지 않게 힘들고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생이 막 잠이 들어 엄마가 은행에 다녀온 사이 순이가 어린 동생 영이를 돌보게 된다.
엄마가 문을 나선지 얼마 안 지나 영이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순이는 영이의 신발을 신겨주며 마치 엄마처럼 달랜다.
"아이, 착하지, 우리 영이.
언니가 재미있게 놀아줄게.
자, 이리 와 !"
그제야 영이는 울음을 그친다.
아장아장 걷는 영이의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잡아 이끌 때 순이는 문득 키가 쑥 자라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순이는 동생을 위해 분필을 꺼내 기찻길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차역과 산과 터널을 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영이가 보이지 않는다. 순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동생을 잘 돌봐야할 순이에게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영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 때 큰길 쪽에서 끼익! 자전거를 급하게 멈춰 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이가 다쳤으면 "어떡해!" 쿵쿵 뛰는 가슴으로 달려간다.
이 때 순이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게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생을 잃고 찾아 헤맨 어린 날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순이가 동생을 돌보는 일이 처음이지만, 내게는 이미 동생이 그림자처럼 떠맡겨진 골치 아픈 존재였으므로 나는 틈만 나면 어떻게든 동생의 눈을 피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던 때였다.
동생을 떼어놓고 친구들과 신 나게 산으로 강으로 헤매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이처럼 동생을 찾아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어 우리 가족 모두가 나서 뿔뿔이 흩어져 어두워지도록 찾아다녔지만 동생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어두운 눈빛을 보면서, 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아 어린속에도 가슴이 얼마나 탔는지 모른다.
늦게서야 돌아온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혹시 강물에 빠졌을까봐 횃불을 밝히고 대나무 장대로 온 강바닥을 휘젓고 다녔지만 날이 새도록 동생은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모두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파출소에서 미아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을 찾으러 갔던 누님의 말로는 눈물과 콧물이 뒤엉킨 얼굴로 순경 아저씨가 끓여준 라면을 먹고 있다가 가족들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그 동공 속에 기쁨으로 반짝였을 동생의 눈빛은 순이가 공원에서 어린 순이를 찾아냈을 때와 닮아있었으리라.
순이가 어린 동생을 찾아 뛰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실감나게 그려졌는지, 마치 쿵쿵 뛰는 심장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큰길에서 자전거와 부딪친 건 영이가 아니다.
이번에는 놀이터로 뛰는데, 저만큼 앞에 조그만 여자 아이가 걸어가는 게 보인다.
" 영이야 !"
큰 소리로 불렀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버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낯선 아이다.
이번에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나서 뛰어가 봤더니, 또 모르는 아이다.
" 영이야, 영이야 !"를 외치며 놀이터로 다가가는 순이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고 달음박질도 빨라진다.
이윽고 놀이터에 다가갔더니, 있다! 틀림없이 영이다.
순이는 천 리 만 리, 아니 온세상을 다 헤맨 끝에 어린 동생을 찾아낸 듯싶은데, 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놀이터 모래밭에 웅크리고 앉아서 놀고 있다.
순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영이한테 달려간다. 영이도 순이를 알아보고 방긋 웃으며 모래로 범벅이 된 손을 흔들어보인다.
그런 동생을 순이가 꼭 껴안아준다.
어린 영이는 언니가 왜 이렇게 자신을 꼭 껴안는지 모른다. 저만치에서 볼일을 마친 엄마가 오고 있다.
책장을 덮으면 뒷표지에 엄마와 순이가 영이의 손을 잡고 오는데, 순이는 활짝 웃고 있지만 동생 영이는 뭔가 화가 난 표정이다. 엄마는 그 모습을 의아한 듯 바라본다. 이는 순이와 영이의 갈등이 계속 되리라는 복선이다. 형제(자매)는 커가면서 이와 유사한 과정을 수없이 겪을 것이다.
나는 어린 날 순이처럼 동생이 내게 맡겨졌을 때 착한 형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것은 내 성격이 못되고 모나서가 아니라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무거워서였기 때문이다.
하야시 아키코의 작품으로는 위에 소개한 책 말고도 좋은 책이 많이 있다. 아직도 하야시 아키코의 멋진 책을 구입하지 못하신 분은 당장 서점으로 뛰어가 한 아름 안고 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