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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아저씨〉 정승각 그림, 권정생 글

〈강아지 똥〉의 작가 정승각
〈황소 아저씨〉을 중심으로
정승각 그림, 권정생 글
길벗어린이

동화 〈다섯 시 반에 멈춘 시계〉의 작가 강정규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서 우리 일행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노란 봉투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장이라시며 읽어주신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중략)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 선생님은 생전에 지인들이 찾아가면 개사료를 한 주먹 꺼내 먹어보라고 내밀곤 했다고 한다. 당황해서 머뭇거리면 입안에 털어 넣어 오물거리면서 먹을만 하다고 하셨단다.
그런데 나중에 권정생 선생님의 삶( 유언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듯한)을 바탕으로한 그림책 "〈강아지 똥 할아버지〉 장주식 글 최석운 그림 사계절"이 나와서 반갑게 보았다.
우리 곁에 이런 가식없는 삶을 살다 가신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 분과 동시대를 같이 했음에도 찾아뵙고 인사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황소 아저씨〉는 권정생 선생님의 삶의 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황소 아저씨의 도움으로 부모를 잃은 새앙쥐 형제들이 추운 겨울날 배고픔을 잊고 잘 지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정승각 작가가  파란색 바탕에 하얀색과 노랑색을 잘 조화시켜 전체적으로 힘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그림책을 헝겊 위에 잘 그려냈다.
보름달이 은가루 같은 달빛을 외양간에 쏟아 놓고 있다. 황소 아저씨가 보릿짚에 주둥이를 파묻고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데, 새앙쥐 한 마리가 외양간 모퉁이 벽 구멍으로 얼굴을 쑥 내민다.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새앙쥐가 황소 아저씨의 등을 타고 구유 쪽으로 달려 간다. 황소 아저씨가 등이 가려워 긴 꼬리로 후려치자 외양간 바닥에 동댕이쳐진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굶주리는 동생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왔다는 말에 흔쾌히 구유 속의 먹이를 가져가라고 말한다.  이는 동화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미화된 것이 아니다. 작가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약자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했을을 보여주는 대목인 것이다.
먹을 것이 넘쳐 흘러도 약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이 오늘날 강자의 모습이다.
어제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영화 [베테랑]을 보았다. 체불임금을 받으러 간 트럭 운전수(정웅인 역)가 대기업 셋째 조태오( 유아인 역)가 시킨 싸움에서 깡패 출신 하청 업체 소장에게 죽도록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어린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싸울 의지 없이 일방적으로 맞는다. 피투성이가 된 운전수의 손에 체불임금과 치료비를 더한 수표가 쥐여 진다.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모습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대기업의 야구방망이 사건 및 폭행보복 사건이 지나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이것이 가진 자가 약자에 베푸는 선행이다.
아기 새앙쥐들이 다 자라 볼볼 기어다닐 수 있게 되자 동생들을 모두 오게 해 실컷 먹게 한다. 자신이 먹고 남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선행일 수는 없다.
사실 우리는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겨울철이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날짐승을 위해 까치감을 남겨두는 순하고 착한 민족이었다.
황소 아저씨는 남은 음식만 아니라 생쥐들을 오게해 함께 살게 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황소 아저씨가 생쥐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내어준 것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원했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도 그랬지만 우리 사회는 갈 수록 메말라 가고 있다.
장가도 못 가보고 저세상으로 가신 권정생 선생님은 25살의 청년으로 환생해서 스물 두셋 살쯤의 아가씨와 연애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그런 소망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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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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