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공주》
글 : 조너선 에메트
그림 : 폴리 베르나테네
옮김 : 박창원
출판사 : 킨더랜드
2019년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을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께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이번에는 공주와 돼지가 서로 운명이 바뀐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그야말로 공주에게는 재앙이 돼지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아마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공주는 공주의 자리로, 돼지는 돼지의 자리로 되돌아가리라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빗나간 겁니다. 작가는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요? 먼저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농부가 시장에서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사서 피그멜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밀짚이 가득 실린 수레에 싣고 오다가 잠시 성벽 그늘에 세워두고 한숨 돌리고 있다.
성 꼭대기에서는 왕비가 공주 프리실라를 안고 있었다. 그때 기저귀 속에서 뿌지직 소리가 나더니 지독한 똥 냄새가 풍겨 나온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서투른 왕비는 아기를 난간에 내려놓고는 유모를 데리러 재빨리 다녀온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공주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서 농부의 수레에 착 내려앉는다. 그러자 수레에 있던 아기 돼지는 위로 위로 올라가더니 아기 침대에 쏙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둘의 운명은 한순간에 뒤바뀐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가 돼지로 변했건만 왕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찌 된 일이지 알 것 같다고 한다.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심술쟁이 요정의 짓이라 생각하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들먹인다. 이는 이야기를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이다. 그 점이 이 책의 재미를 유지한다.
아마 왕은 공주가 자라 결혼을 하고 왕자가 입맞춤을 하면 마법에서 깨어나 공주로 돌아올 거라 확신하고 있을 터이다.(개구리 왕자)
농부의 아내도 어찌 된 일인지 알 것 같다고 한다. 아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신들을 위해 착한 요정이 한 일이라 믿는다. (엄지공주)
그렇게 해서 아기 공주는 농부의 딸 피그멜라로 살아가고, 새끼 돼지는 공주 프리실라로 살아가게 된다.
어느 날, 성의 시녀들이 돼지로 변한 공주에 대해 이야기 하는 말을 듣고, 새끼 돼지와 공주가 뒤바뀐 것을 알고(왕자와 거지) 성으로 공주를 데리고 가지만 왕과 왕비는 부자가 되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믿지 않는다.(장화 신은 고양이)
부모님과 함께 돌아온 피그멜라는 양치기 총각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왕자와 결혼한 돼지는 수많은 키스 세례를 받지만 여전히 돼지로 살아간다.
작가는 왜 예쁘고 영리한 공주가 신분을 회복하여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스토리를 버리고 양치기 총각과 결혼해 살게 했을까?
그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고관대작들의 근엄하고 고상한 이면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맡고 사는 것보다는(조선 25대 왕 철종) 양을 치더라도 하루하루 성실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라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